최근 행정통합 논의가 뜨겁다. 정부는 ‘5극 3특’(5극 초광역권과 3개 특별자치도 구축)을 내걸었고, 여야도 권역별 행정통합 추진으로 호응하면서 국토의 재설계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선거용 셈법으로 보는 시각도 있지만, 수도권 일극 체제와 지방소멸 위기에 대한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는 공감대는 그 어느 때보다 분명하다.
관건은 이러한 정책 흐름이 실제 국민의 생각과 얼마나 맞닿아 있느냐는 점이다. 한국리서치 〈여론 속의 여론〉 팀은 2021년에 이어 국가 균형발전에 대한 인식의 추적 조사를 실시했다. 3월 13일 ~ 16일 전국 만18세 이상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민심 변화를 관측하고, ‘5극 3특’과 행정통합에 대한 국민 인식 지형을 살펴보았다.
주요 내용
- 지역 불균형 심각성 인식이 5년 사이 더 공고해졌다(2021년 90% → 2026년 94%). 거주 만족도는 전반적으로 하락했고, 그 폭은 비수도권에서 더 가팔랐다.
- 거주지 이전 의향은 2021년 대비 줄었지만 수도권 쏠림은 오히려 고착화되었고, 그 동안의 균형발전 정책에 대해서는 부정적 평가가 70% 이상으로 우세하다.
- ‘경쟁력 있는 거점도시를 집중 육성’이 필요하다는 응답은 81%에 달해 ‘선택과 집중’ 거점 전략이 효과적이고 바람직한 대안으로 대두되었다.
- ‘5극 3특’ 정책은 인지도(29%)에 비해 수도권-비수도권 격차 해소에 대한 기대감 (59%)이 2배 이상 높다.
- 행정통합을 둘러싸고 ‘예산의 효율성’·‘경쟁력 향상’에 대한 기대와 ‘권역 내 이중소외’·‘정권 교체 후 정책 비일관성’에 대한 우려가 교차하는 가운데, ‘추진과정에서 민주적 절차를 수반해야한다’는 목소리(88%)도 폭넓게 확인된다.
전방위적으로 악화된 불균형 지표
지역 불균형, ‘지방 소멸’을 넘어 ‘국가적 생존 위기’로 인식
수도권 집중과 지역 불균형의 문제가 심각하다는 인식은 5년 사이 더 공고해졌다(‘21년 90% → ‘26년 94%). 이러한 위기감은 지역 격차가 지방 소멸 문제를 넘어 수도권, 나아가 국가 전체의 경쟁력 저하로 이어질 것이라는 우려와도 무관하지 않다.
실제로 국민 10명 중 9명이 수도권 일극체제로 인한 ‘부동산 과열’(92%)과 ‘국가 경쟁력 하락(90%)‘을 염려한다. ‘수도권의 삶의 질 저하’와 ‘결과적으로 수도권 유입 인구도 줄어들 것’이라는 전망도 각각 78%, 64%이다. 모든 항목에서 동의한다는 응답이 5년 전 대비 증가해, 지역 불균형이 초래할 우리나라의 미래에 대한 위기감이 고조되어 있다.
전반적으로 떨어진 거주 만족도, 더 위축된 비수도권
지난 5년 사이 거주 지역별 만족도 지표는 수도권과 비수도권에서 모두 하락했으나, 비수도권의 하락폭이 더 가파르다. ‘우리 지역이 다른 지역에 비해 살기 좋다’는 긍정 응답이 수도권에서 8%포인트(61% → 53%) 하락하는 동안 비수도권은 약 2배인 15%포인트(58% → 43%)떨어졌다. 비수도권 거주자는 일자리(15%)와 문화 여가 생활(24%) 분야의 만족도도 낮으며, 의료복지 서비스, 교육환경, 기초생활 서비스 접근성 등 거주 환경 전반의 만족도도 5년 전보다 하락했다.
더 뼈아픈 지점은 미래 비전에 대한 비관적 인식이 특히 비수도권에서 눈에 띄게 확산되었다는 것이다. 비수도권 거주자의 37%는 ‘내 지역은 비전이 없고 성장 가능성이 낮다’고 답해 수도권(18%)과 2배 이상 격차이며, 이는 2021년(27%) 대비 10%포인트나 상승한 수치다. ‘공정한 기회를 보장받지 못한다’는 박탈감(29%) 역시 수도권(18%)보다 높다.
고착화된 수도권 쏠림과 기존 정책의 실패
전체 응답자 기준 거주 이전 의향은 45%로 5년 전(52%) 대비 감소했으나, 어디로 이동하려는지를 보면 수도권 집중은 더 가속화될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이전 의향이 있는 비수도권 거주자의 절반(51%)이 수도권행을 희망하는 반면, 수도권 거주자의 이전 의향은 상당 부분 수도권 내 이동(63%)에 머무르며, 비수도권 이주를 희망하는 비율은 37%이다. 지역 균형발전에 대한 사실상 전 국민적인 요구에도 불구하고, 그간 추진된 정책들이 수도권만 비대해지는 기형적 구조를 근본적으로 해결하지 못한 것이다. 실제로 응답자 10명 중 7명(71%)은 그간의 균형발전 정책이 ‘효과가 없었다’고 냉담하게 평가한다. 특히 실패의 주된 원인으로 ‘구조적 원인의 미해결(35%)’과 ‘정권마다 정책 일관성 부족(32%)’이 지목된 것을 볼 때, 분산된 자원 분배가 아니라 판을 바꾸는 근본적인 전략이 필요해 보인다.
지방소멸과 거점 전략: 현실론으로의 패러다임 전환
‘피할 수 없다면 적응해야’… ‘현실 수용과 거점 전략’
기존 정책이 한계에 부딪히면서 이제는 지방소멸의 현실을 냉정하게 직시해야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이번 조사에서 특히 주목할 점은, 지방 소멸을 막을 수 없다고 보는 시각(63%)이 다수를 차지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어떤 방법으로 판을 바꿀 수 있을까? 조사 결과 국민들은 ‘선택과 집중’ 전략을 바람직한 해법으로 본다. ‘모든 지방을 살리는 것은 불가능하므로 경쟁력 있는 거점도시를 집중 육성해야 한다’는 의견에 국민 10명 중 8명(81%)이 동의한다. 또한 ‘지방 광역 시도를 통합해 수도권과 경쟁할 규모를 키워야 한다’는 데에도 76%가 찬성해, 몸집을 키워 경쟁력을 확보하자는 전략이 지지를 받고 있다. 이러한 인식이 수도권과 비수도권 모두에서 고르게 나타났다는 점도 눈에 띈다.
지역 불균형 문제를 누가 주도해서 풀어야 하는지에 대해서도 방식의 변화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크다. 국민들은 그간의 ‘정부 주도의 일괄 배분’(38%)보다 ‘지역 주도로 전략을 설계하고 정부가 지원하는 방식’(51%)을 더 효과적이라고 평가한다. 하향식 정책보다는 지역 스스로 방향키를 잡고 책임지는 구조가 더 효과적이라는 것이다.
5극 3특과 광역 행정통합
5극 3특 정책에 대한 낮은 인지도, 그러나 기대감은 확인
앞서 확인한 거점 중심 성장에 대한 국민적 공감대는 정부가 실용주의를 내세워 추진 중인 ‘5극 3특’ 정책의 방향과 일맥상통한다. 실제 조사 결과, ‘5극 3특’ 정책에 대한 인지도는 29%(내용까지 3%, 들어본 적 있음 26%)에 불과하다. 하지만 정책의 내용을 제시한 뒤에 묻자 응답자의 59%가 ‘수도권-비수도권 격차 해소에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답해, 인지도 대비 2배 이상 높은 기대감을 드러낸다. 세부 전략별로는 주력산업 육성(84%), 권역 거점도시 집중 성장(76%), 재정권 확대(74%)와 같은 ‘경제적 측면’이 보다 실효성 있는 대안으로 지목된다.
행정통합으로 생활 여건 향상 전망, 구조적 문제 해결에는 한계
광역 행정통합 후 향상될 것으로 본 영역은 교통체계(47%), 의료복지(40%), 문화 여가 생활(39%) 순이다. 반면, 고질적인 인구 문제나 부동산 문제를 개선해줄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상대적으로 회의적인 시각이 엿보인다. 통합이 인프라와 같은 1차적인 생활 여건 개선에는 도움이 될 수 있어도 인구 및 부동산의 양극화와 같은 구조적인 문제까지 해결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본 것이다.
10명 중 6명은 ‘초광역 생활권으로 이동 의향 있다’
그렇다면 정책이 설계된 방향대로, 즉 ‘실제 이주’로 이어질 수 있을까? 수도권 수준의 일자리·교육·의료·교통 여건을 갖춘 ‘초광역 생활권’이 조성되었을 때 실제 이주 의향이 있는지에 대한 반응은 상당 부분 긍정적이다. 전체 국민의 10명 중 6명(63%)이 이주 의향을 밝힌 것이다. 수도권에서도 2명 중 1명이, 비수도권 모든 지역에서도 10명 중 7명 이상이 이주 의향이 있다. 확신하기는 이르지만 ‘5극 3특’ 전략이 실제 변화를 만들어낼 수 있다는 기대를 가지게끔 하는 결과이다.
통합의 기대효과는 ‘예산의 효율성’과 ‘경쟁력 향상’
행정통합 무산 지역도 재추진 필요 의견이 우세
국민들은 통합의 가장 큰 효과로 ‘행정 중복 축소를 통한 예산 절감'(78%)과 ‘규모의 경제를 통한 지역 경쟁력 향상'(69%)을 꼽는다. 지역별로는 통합이 가시화된 광주·전라와 과거 메가시티 논의가 있었던 부산·울산·경남에서 기대감이 전국 평균을 웃돌고, 통합 논의가 보류된 대전·충청·세종과 대구·경북에서도 60~70% 수준의 동의가 확인된다. ‘통합이 무산된 지역도 재추진해야 한다’는 진술문에도 국민의 67%가 동의하며, ‘지방 인구 감소와 수도권 쏠림 해소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데에도 전국적으로 50~60% 내외가 동의한다.
‘권역 내 이중소외’, ‘정책의 일관성’ 등 난제… 해법은 ‘민주적 절차’
반면, 성공적인 안착을 위해 해결해야 할 과제도 선명하다. 가장 큰 우려는 ‘권역 내 중심도시로의 쏠림 심화’(81%)로, 거점 육성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권역 내 중소도시 및 농어촌의 ‘이중 소외’가 가속화될 것이라는 경계심이 확인된다. 다음으로 ‘정권 교체 후 지원 불확실성’(70%)에 대한 우려도 높다. ‘지자체의 운영 능력 부족’이나 ‘통합 지역에 대한 집중 지원이 불러올 불공정성’(각각 65%)에 대한 우려 역시 수도권과 광주·전라 지역을 제외한 대부분 권역에서 평균보다 높다.
이러한 난제들은 결코 간단히 해결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국민 대다수(88%)가 요구한 ‘민주적 절차’라는 틀 안에서 해법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을지 모른다. 주민 참여를 바탕으로 한 공론화 과정이 권역 내 쏠림이나 지역 간 형평성 문제를 조율하고 합의를 이끌어내는 통로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정권이 바뀌어도 정책이 흔들리지 않는 기반이 되고, 지자체의 부족한 역량을 주민의 적극적인 참여와 관심으로 보완해나가는 토대가 된다.
지난 5년 사이 지역 불균형을 나타내는 지표들이 전방위적으로 악화된 현실은, 모든 지역에 분산해서 배분하던 과거 방식만으로는 지금의 위기를 헤쳐나가기 어렵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번 조사를 통해 확인된 민심 역시 모든 지역을 똑같이 살리겠다는 과거의 접근법보다는, 실제로 경쟁력을 키울 수 있는 거점 성장 전략을 선호한다. 수도권 수준의 정주 여건이 갖춰진다면 이주하겠다는 응답이 높게 나타난 점도 긍정적인 신호로 읽힌다. 다만 이러한 방향 전환이 실질적인 성과로 이어지려면, 국민 대다수가 강조한 ‘민주적 참여와 충분한 사회적 합의’를 정책 과정에 어떻게 녹여낼 것인지가 관건이다. 주민이 직접 소통하고 결정하는 과정이 뒷받침될 때, 비로소 행정통합은 대한민국 재설계의 실질적인 동력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나라가 균형 잡힌 성장의 새로운 발판을 다질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조사개요
모집단: 전국의 만18세 이상 남녀
표집틀: 한국리서치 마스터샘플(26년 1월 기준 약 97만 명)
표집방법: 지역별, 성별, 연령별 비례할당추출
표본크기: 1,000명
표본오차: 무작위추출을 전제할 경우, 95% 신뢰수준에서 최대허용 표집오차는 ±3.1%p
조사방법: 웹조사(휴대전화 문자와 이메일을 통해 url 발송)
가중치 부여방식: 지역별,성별,연령별 가중치 부여(셀가중) (2025년 12월 행정안전부 발표 주민등록 인구 기준)
응답율: 조사요청 42,838명, 조사참여 2,417명, 조사완료 1,000명 (요청대비 2.3%, 참여대비 41.4%)
조사일시: 2026년 3월 13일 ∼ 3월 16일
조사기관: (주)한국리서치(대표이사 노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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