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한국사회 공정성 인식조사 보고서의 5개 글 중 2 번째 글입니다.

“정의(Justice)”는 동서양에서 모두 오랜 시간 동안 정치철학의 핵심 주제였다. 그대 그리스에서 정의는 사회와 개인에게 가장 중요한 덕목으로 모든 철학자들의 논쟁 주제였고, 고대 중국에서도 정의로운 분배의 실현은 중대한 정치적 목표였다. 정의의 문제는 집단의 의사결정과 재화 분배의 정당성과 규범으로 작동하게 되며, 제도 신뢰의 축적과 사회 통합의 기준점 역할을 한다. 정의롭지 못한 정치적 의사결정과 불공정한 제도 운영은 사회갈등과 시민 저항을 촉발시킨다는 점에서 각별한 관심이 필요하다.

한국의 경우 전쟁 이후 산업화, 민주화라는 거시적 국가 과제가 어느 정도 공고화된 2000년 대 이후, 정의의 문제가 국가적, 사회적 의제로 부상하는 양상이다. 2010년 “정의란 무엇인가?”라는 무거운 제목을 내건 마이클 샌델 교수의 저작은 한국에서 유독 베스트셀러가 되었는데, 이는 정의가 우리 사회의 중요한 화두임을 보여주는 상징적 사건이었다. 임기 초 낮은 지지율에 직면했던 이명박 대통령은 “공정사회론”을 내세우며 15%포인트 안팎의 지지율 상승을 경험했다. 그러나 임기 중 측근들의 비리는 오히려 불공정 이미지를 가중시켰고, 최근 밝혀진 비리 혐의에 대한 국민들의 시선도 싸늘하다. 최순실 사건 과정에서 드러난 정유라의 이화여대 입학비리 사건은 사회적으로 정의를 둘러싼 기름에 불을 끼얹었다. 평창올림픽에서는 정부의 여자 아이스하키 남북단일팀 합의에 대해 적지 않은 시민들이 공정하지 못하다는 분노를 표출하며 정부를 곤혹스럽게 했다. 이러한 집단적인 분노에 대해 “예상치 못했다”는 당국자들의 반응이 나오고, 언론은 이에 대해 젊은 세대와 고령 세대 간에 “서로 이해하기 힘든” 정의의 관점들이 충돌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그런데 우리 사회에서 정의를 둘러싼 사회적 갈등은 사회 전체의 도덕성이나 정의감이 높아져서가 아니라, 부정의에 대한 사적 포용성이 낮아진 데서 나타나는 것으로 보인다. 7-80년대의 고속 성장기에는 타인의 부정의(不正義)가 각 개인들이 성취할 수 있는 삶이나 지위와 크게 영향을 미치거나 상대적 박탈감을 크게 주지 않았기 때문에 어느 정도 용납 가능했다. 그러나 외환위기 이후 근 20년 간 지속되고 있는 경쟁적 사회 구조는 개인적 차원에서 부정의에 대한 포용의 수준을 크게 낮추었다. 이렇게 보면 최근 정의를 둘러 싼 논란은, 한국 경제가 일정한 수준에 이른 이후 장기간의 저성장과 극단적인 사회양극화의 심화, 그리고 계층 이동성의 극적인 하락이라는 구조적 측면과 긴밀히 연결된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정의의 문제가 사회의 핵심 의제로 떠오른 한국사회에서 정작 시민들이 생각하는 정의가 무엇이고, 어떤 기준으로 공정을 판단하는지에 대한 체계적인 조사연구 결과를 찾아보기는 힘들다. 한국사회에서 정의란 무엇인가? 무엇이 공정한 것인가? 이러한 질문에 대해 제대로 답하고 나아가 보다 정의롭고 공정한 한국사회를 만들어가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사람들이 생각하는 정의와 공정에 대한 개념 정의(definition)와 인식을 정확히 이해하는 작업을 시작해야 한다. 즉, 현재 한국인의 ‘정의감(sense of justice)’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형성되어 있는지를 확인하는 것부터 시작해야 하는 것이다. 이에 근거하여 시민들이 정의의 관점에서 한국사회를 어떻게 평가하고 있으며, 공정한 한국사회를 만들기 위해 어떠한 정책과 제도적 대안을 선호하는 지 파악해야 한다. 한국리서치 2월 정기조사의 기획 주제를 공정성으로 잡은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본 보고서를 통해 한국인들이 생각하는 공정성에 대한 인식과 태도에 대한 보다 심층적인 이해를 돕고자 한다.

기여도에 따른 차등 분배 선호

우리는 다양한 차원, 다양한 영역에서 정의(Justice)의 문제에 직면한다. 정의는 정치적, 법적, 사회적, 경제적 차원 등 다양한 영역에서 논의될 수 있지만, 가장 일반적으로는 사회적 재화의 공정한 배분의 문제다. 서양에서는 고대부터 모든 정치 공동체에서는 각자에게 정당한 몫을 공정하게 분배하는 것을 정의의 핵심적 가치로 여겼다. 동양의 유교 전통에서 이것은 ‘균평(均平)의 원리’로서 정립되었다. 또한 근대 이후 모든 시민이 권리의 주체가 된 이래로는, 분배 정의(distributive justice)를 확립하는 것이 국가의 중요한 책무가 되었다. 본 보고서에서는 공정한 분배에서 공정의 의미를 규명하기 위해 (1) 한국사회가 생각하는 평등의 의미 (2) 경쟁에 대한 시각과 공정한 보상의 기준 (3) 개인의 자유, 특히 사적 소유권에 대한 공적 개입에 대한 태도를 집중적으로 조사하였다. 이 장 에서는 이 세 가지 기준에 따라 조사된 결과를 소개하고자 한다.

한국사회의 분배정의

산술적 평등보다 기여도에 따른 공정한 차이를 선호세대별, 소득별 인식 차이 없어
능력, 노력의 차이에 따라 보수의 차이 클수록 좋다, 66%

한국인이 생각하는 분배 정의의 유형을 파악하기 위해 우선 분배 과정에서 결과의 평등을 추구하는가, 아니면 개인의 기여와 성취(능력이나 노력의 차이)에 따른 차등분배를 지향하는가에 대한 질문을 했다. “능력이나 노력의 차이에 따른 보수의 차이가 클수록 좋다”라는 의견(갑)에 가깝다는 의견(차등분배론)이 66%(매우 17%+대체로 49%)인 반면, “능력이나 노력의 차이에 따른 보수의 차이는 적을수록 좋다”(을)는 의견은 27%에 그쳤다. 주목할 점은 사회경제적 배경이나 이념적 성향에 따라 큰 차이가 없이 고르게 차등분배론에 대한 선호가 높다는 것이다. 실제로 [표1]에서처럼 연령별, 소득별, 학력별로 큰 편차가 없다. 특히 정치적 이념성향에서 진보, 보수 사이에 강도차이만 일부 있을 뿐 공히 능력/노력에 따른 보수의 차이는 클수록 좋다는 의견에 공감하는 비율이 70%에 육박했다.

경쟁과 보상

경쟁 만능론도, 경쟁 망국론도 아닌 양면적 인식

“경쟁은 생산성을 높이는 데 기여” 79%, “경쟁의 부작용이 심각” 62%

기여도나 개인의 성과에 기반한 차등분배론은 공정한 경쟁과 그에 비례한 보상을 필요로 한다. 한편에서는 경쟁이 효율적 자원배분의 기제이자 생산성의 촉진을 만들어내는 만능키로 이해되어 온 반면 다른 한편에서의 경쟁은 경제적 불평등을 낳고 인간의 삶을 피폐화하는 망국의 근원으로 지적되기도 한다. 그렇다면 시민들이 바라보는 경쟁은 어떤 모습일까? 한국사회는 경쟁의 생산적 역할에 대한 긍정적 평가와 함께 그 부작용에 대해서도 동시에 우려하는 양면적인 태도가 확인된다.

우선 “한국에서 경쟁의 부작용이 심각하다”는 여론이 62%나 되었다. 그러나 동시에 “우리 사회에서 경쟁은 생산성 향상에 도움이 된다”는 주장에 대해 무려 79%가 동의하고 있다. 한편 “우리 사회에서 경쟁은 삶의 질을 떨어뜨린다”는 주장에 대해 동의한다는 의견은 45%로 상대적으로 낮았지만, 20대에서는 58%가 경쟁이 삶의 질을 떨어뜨린다고 답해 다른 세대에 비해 경쟁의 부작용이 집중되고 있음을 보여준다.1) 결론적으로 한국사회에서는 경쟁의 긍정적 기능을 인정하고 있으나 동시에 부작용에 대한 우려도 공존하고 있는 셈이다.

보상의 기준 : “근태에 따른 분배라는 한국적 특성 작용, 성과/능력보다 노력 중시 문화

정당한 임금격차 요인: “근무태도” 43% > “능력” 23% > “성과” 22% > 근속 연수 16%

그렇다면 공정한 차등의 기준은 무엇일까? [그림4]에서 한국인이 생각하는 임금의 차이를 두어야 할 요인으로는 “근무태도”를 꼽은 응답이 가장 많았다. 43%가 근무태도에 따라 “보수의 차이가 커야 한다”고 답했고, 50%는 “약간 차이를 두어야 한다”고 답했다. 반면 “자질과 능력”, “업무 성과”, “근속 연수” 등 현재 임금 차이를 가져오는 요인들의 경우 보수의 차이를 두어야 할 요인이기는 하지만, 격차는 크지 말았으면 하는 여론이 다수다. 자질과 능력, 성과, 근속연수에 따라 “보수 차이가 커야 한다”는 여론은 순서대로 23%, 22%, 16%에 그친 반면, “약간의 차이를 두어야 한다”는 입장이 65~69%로 에 달했다. 뒤에서 좀 더 자세히 살펴보겠지만, 공정한 경쟁이 이루어지지 못한 조건에서 성과 보상도 미덥지 못하고, 자질과 능력에 대한 평가에도 불신이 작용하고 있는 듯하다.

학력수준은 임금 차이 둘 이유 아니다 69%

필요에 따른 분배에는 부정적, “가정 형편”, “부양 가족 수보수 차등 요인 아니다

특히 주목할 점은 현실에서 임금 차이를 가져오는 가장 큰 요인 중의 하나인 학력요인에 대해 “임금차이를 둘 필요가 없다”는 응답이 69%였다. 대졸 층에서도 65%로 고졸 층의 72%에 비해 낮기는 했지만, 학력수준은 임금 차이를 둘 근거로 부족하다는 인식이 지배적이었다. 한국에서 학력은 업무 능력이나 성취를 보여주는 지표로서 의미를 잃고 있음을 시사한다. 이제 학력은 부모의 가정 경제적 수준이나, 개인의 노력 이외의 요인들이 낳은 결과물에 불과한지도 모르겠다. 한편 “필요(need)에 따른 분배관”을 엿볼 수 있는 “부양가족 수”나 “가정형편”을 임금 차등의 조건으로 간주하는 여론은 소수에 불과하다. 부양가족 수를 고려하여 임금 차이를 둘 필요는 없다는 의견이 58%였다. 가정형편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의견도 69%나 되었다.

한국의 야근 문화, 결과보다 과정 중시 문화의 기반으로 작용

노력에 대한 보상 > 성과에 대한 보상 > 필요에 의한 보상

이러한 결과는 한국인들이 능력(competence)이나 성과(outcome)에 따른 “업적주의 (meritocracy)”보다 노력과 과정에 대한 보상을 공정의 기준으로 삼고 있음을 시사한다. 생산성보다는 근면성을 기준으로 한 보상이 더 필요하다는 것이다. 반면 부양가족이나 가정형편에 따른 보상에 대한 요구도 작게 나타났는데, 이는 필요에 의한 보상을 정의로 보는 시각이 약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본 조사결과는 삶의 형태를 설명하는 데에도 일정한 암시를 준다. 즉 근면성을 공정한 보상의 기준으로 삼게 되면 왜 한국인들이 많은 야근을 하는지, 법적 분쟁이나 사회적 갈등을 대할 때 결과보다 과정, 사연에 더 많은 주목하는지도 납득이 된다. 또한 능력이나 성과보다는 열심히 일한 것에 대한 보상을 원하는 입장에서 결과를 놓고 임금을 책정하는 연봉급제에 대해 충분히 수긍하지 않으리라는 것, 입시 경쟁에서 성실한 노력이 보상받지 못할 때 왜 크게 좌절을 느끼는지에 대해서도 설명의 근거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공익 대 자유

재산권 제한 가능 40% vs. 재산권 제한 반대 50%, 젊은 세대에서 재산권 제한에 소극적

한편, 공익과 개인의 재산권이 충돌 시 어떤 가치를 추구해야 하는 지에 대해서는 재산권 우선 입장이 다소 앞서는 가운데 입장이 엇갈린다. “공공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개인의 재산권을 제한할 수 있다”는 공동체주의적 입장(갑)과 “공공의 이익을 위해 개인의 재산권을 제한해서는 안된다”는 자유지상주의적 태도(을)에 대해 40%는 갑의 입장을, 51%는 을의 입장을 선호한다고 답했다(그림5).

이념적으로는 진보층일수록 공익을 위한 재산권 제한에 긍정적이고, 중도 및 보수층에서 재산권 보호를 우선하는 태도가 강하다. 하지만 세대별로는 진보성향이 강한 젊은 세대에서 오히려 재산권 제한에 동의하는 공동체주의적 인식이 약하다. [그림6]를 보면 공익을 위해 재산권을 제한할 수 있다는 응답이 20대 34%(매우 5%+대체로 29%), 30대 37%(매우 13%+ 대체로 24%), 40대 39%(매우 11%+대체로 28%)에 그쳤다. 반면 50대에서는 46%(매우 15%+대체로 31%), 60대 이상 45%(매우 14%+대체로 31%)가 공익을 위해 재산권을 제한할 수 있다는 공동체주의적 태도가 젊은 세대에 비해 상대적으로 강했다.

정치적으로는 자유보다 질서 선호, 세대 균열 뚜렷

정치적 자유보다 질서 유지 우선” 58%, “시민 불편 초래하면 집회시위 허용하지 말아야” 64%

경제적으로는 전체적으로 재산권 우선입장과 공익우선 입장이 팽팽한 가운데 재산권 보호입장이 다소 앞섰으나 정치적으로는 자유보다 공동체 질서를 우선하는 생각이 컸다. “정부는 정치적 자유보다 질서를 우선해야 한다”는 입장이 58%(매우 21%+대체로 38%)였고, “정치적 질서보다 개인의 자유를 우선해야 한다”는 입장은 35%(매우 10%+대체로 24%)에 불과했다. 보다 구체적인 사례로 “집회 시위는 헌법이 보장한 권리이기 때문에 시민의 불편을 초래하더라도 허용해야 한다”는 입장은 31%(매우 9%+대체로 22%), “시민의 불편을 초래할 경우 허용해서는 안된다”는 입장이 64%(매우 27%+대체로 27%)였다.

진보/젊은 세대는 자유 우선, 중도보수/40대 이상은 질서 우선

주목할 점은 정치적 자유와 질서에 대한 태도에서는 세대별, 이념별로 뚜렷한 인식의 차이가 확인된다는 점이다. 젊은 세대와 진보층일수록 정치적 자유를 우선하는 경향이 강하고, 고령 세대와 보수층에서 정치적 자유보다 정치적 질서를 앞세우는 경향이 뚜렷하다. 정치적 질서가 우선이라는 갑의 주장에 대해 가깝다는 응답이 고연령 세대 및 보수층으로 갈수록 뚜렷하다.

공익과 재산권(자유) 태도의 중요성

성장복지정책 등에 대한 주요 정책 선호에 영향

공동체의 이익과 개인의 자유(재산권)에 대한 인식이 정의 실현 과정에서 중요한 것은 정부의 개입과 분배정책의 방향에 대한 태도를 좌우하는 출발점이 되기 때문이다. 개인의 소유권을 절대적인 불개입의 영역으로 보는 자유지상주의는 전통적으로 정부의 복지정책에 극단적인 냉소로 이어진 반면, 공익과 사회적 수준에서의 공정을 우선하는 입장에서는 정부의 분배 및 재분배 정책을 국가의 기본 책무로 이해한다.

실제로 이번 조사결과를 보면 개인의 소유권을 우선하는 응답자들 중에서는 성장정책을 선호한다는 입장이 46%였다. 공익을 목적으로 재산권 제한이 가능하다고 보는 사람들 중에서 성장정책을 우선해야 한다는 비율이 34%에 그친 것과 대비된다. 반대로 재산권 보호를 우선해야 한다는 입장을 가진 사람들 중에서 복지정책 선호비율(52%)이 재산권 제한이 가능하다고 보는 입장을 가진 사람들 중에서 복지정책을 선호하는 비율(64%)에 미치지 못한다.

담당자: 정한울 여론분석 전문위원
전화: 02-3014-1057
e-mail: hw.jeong@hrc.co.kr

조사개요

  • 모집단: 전국의 만 19세 이상 성인남녀
  • 표집틀: 한국리서치 마스터샘플(2017년 12월 기준 약 40만명)
  • 표집방법: 지역별, 성별, 연령별, 학력별, 직업별 비례할당추출
  • 표본크기: 1,000명
  • 표본오차: 무작위추출을 전제할 경우, 95%신뢰수준에서 최대허용 표집오차는 ±3.1%p
  • 조사방법: 웹조사(휴대전화 문자와 이메일을 통해 url 발송)
  • 가중치 부여방식: 2017년 9월 행정안전부 발표 주민등록인구 기준 지역별, 성별, 연령별 가중치 부여(림가중)
  • 응답률: 메일 발송 7,673명, 메일오픈 1,713명, 조사완료 1,000명 (발송대비 13.0%, 오픈대비 58.4%, 참여대비 71.2%)
  • 조사일시: 2018년 2월 23일 ~ 2월 28일
  • 조사기관: ㈜한국리서치(대표이사 노익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