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요 내용
- 우리 사회가 서로 신뢰하고 협력하는 통합된 사회라고 느끼는 응답은 16%(100점 환산 39점)에 그친 반면, 그렇지 않다는 응답은 49%였다. ‘국민통합이 잘 이루어지고 있다’는 긍정 응답은 7%로 10명 중 1명에도 미치지 못했다. 다만 ‘다양한 의견과 가치를 가진 사람들이 함께 공존한다’는 응답은 51%로, 다양성은 인정하면서도 통합은 체감하지 못하는 인식이 확인된다.
- 가장 심각한 갈등으로는 ‘진보-보수 갈등'(36%)과 ‘여당-야당 갈등'(24%)이 1·2위를 차지해, 정치적 갈등이 전체의 60%를 차지했다. ‘부유층-저소득층 갈등'(13%), ‘젠더 갈등'(9%), ‘세대 갈등'(8%)이 뒤를 이었다. 국민통합을 위해 정부가 적극 나서야 한다는 응답은 63%였으나, 정부가 실질적으로 갈등을 줄일 수 있다는 응답은 43%로 20%포인트 낮았다.
- 통합의 세 가지 조건인 공정성(32점), 예측가능성(46점), 일체감(45점) 모두 100점 만점에 50점을 넘지 못했다. 특히 ‘권력이나 배경과 무관하게 법과 규칙이 동등하게 적용된다’는 27점으로 전체 문항 중 가장 낮았고, 10명 중 7명(70%)이 부정적으로 답했다. 공정성은 사회 수준(32점)보다 개인 체감(38점)이 높은 반면, 안전망은 사회 수준(43점)보다 개인 체감(36점)이 7점 낮아 ‘제도는 있으나 나를 지켜주지는 않는다’는 인식이 나타났다.
- 가장 시급한 정책 과제로는 ‘정책결정 과정의 투명한 공개’가 1위, ‘계층이동 기회 보장’이 2위로 꼽혔으며, 세대·이념·계층과 무관하게 두 과제에 응답이 집중됐다. 한편 ‘정치 양극화가 심화될수록 국민통합은 더 어려워진다’는 데 80%가 동의해 전체 문항 중 가장 높은 동의율을 보였고, 여야가 타협·협력할 수 있다는 응답은 19%에 그쳤다. 기관 신뢰에서는 국회 불신이 61%로 가장 높았다.
들어가며 ‒ 우리 사회 갈등과 통합의 과제를 묻다
추석이 돌아왔다. 고속도로는 막히고, 오랜만에 가족이 한자리에 모인다. 차례상이 차려지고, 오랜만에 마주한 얼굴들이 반갑다. 그러나 음식이 오가고 안부가 오가다 누군가 뉴스 이야기를 꺼내는 순간, 공기가 달라진다. 말을 삼키는 사람이 생기고, 목소리가 높아지기도 한다. 결국 화제를 돌리는 것은 늘 어머니 몫이다. “그냥 밥이나 먹자.”
명절은 우리가 하나라는 것을 확인하는 시간이어야 한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명절은 우리가 얼마나 달라졌는지를 확인하는 시간이 되어가고 있다. 생각해보면 우리 사회는 늘 이런 긴장 속에 있었다. 하나이고 싶지만, 하나가 되기 어려운.
1950년 6월, 전쟁이 터졌다. 같은 말을 쓰고 같은 역사를 나눈 사람들이 서로에게 총을 겨눴다. 그 상처는 70년이 넘은 지금도 아물지 않았다. 휴전선 하나를 사이에 두고 세계에서 가장 단절된 두 사회가 됐다.
전쟁이 끝난 뒤에도 갈등은 멈추지 않았다. 산업화의 과실이 특정 지역에 집중되면서 지역 갈등이 정치를 갈랐다. 군사독재에 맞선 민주화 운동은 진보와 보수의 전선을 만들었다. 1997년 외환위기는 사회 전체를 뒤흔들었고, 정규직과 비정규직, 가진 자와 못 가진 자의 골을 깊게 팠다. 2000년대 이후에는 세대가 갈리고, 젠더가 갈렸다. 갈등의 이름은 시대마다 달랐지만, 우리 사회가 갈등 없이 숨을 고른 시간은 사실 거의 없었다.
그러나 우리는 그때마다 버텼다. 전쟁의 폐허 위에서 경제를 일으켰고, 독재에 맞서 민주주의를 쟁취했다. 외환위기의 한복판에서 금 모으기 운동을 벌였고, 월드컵 광장에서 수백만 명이 하나가 됐다. 절체절명의 순간마다 우리가 하나라는 감각이 사회를 붙들었다.
지금 우리에게는 그 감각이 있는가.
월드컵 광장의 함성은 기억하지만, 그 열기가 식은 자리에 무엇이 남았는지는 아무도 묻지 않았다.
분단은 여전하고, 이념의 골은 더 깊어졌으며, 세대와 젠더의 갈등은 새로운 전선이 됐다. 민주주의는 갈등을 없애는 제도가 아니다. 생각이 다른 사람들이 같은 규칙 아래 함께 살아갈 수 있도록 만드는 제도다. 그 규칙이 공정하게 작동하고, 노력한 만큼 기회가 주어지며, 위기에 처했을 때 혼자가 아니라는 감각이 살아있는 한, 갈등은 사회를 무너뜨리지 않는다. 오히려 더 나은 방향을 찾게 하는 힘이 된다.
문제는 그 신뢰가 흔들릴 때다. 저출생도, 기후 위기도, 경제적 불평등도 결국 사회 전체의 협력 없이는 해결할 수 없는 과제들이다. 통합은 좋은 감정의 문제가 아니다. 우리 사회가 앞으로 나아가기 위한 조건이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 국민은 우리 사회가 그 조건을 갖추고 있다고 느끼고 있을까. 한국리서치 ‘여론 속의 여론’ 팀은 2026년 8월 7일부터 10일까지 전국 만 18세 이상 성인 1,000명을 대상으로 국민통합에 대한 인식을 조사했다.
사회 통합에 대한 인식
사회 통합 인식 100점 만점에 39점, 낙제에 가까운 수준
“지금 우리 사회, 서로 믿고 협력하는 통합된 사회라고 느끼십니까?”
이 질문에 그렇다고 답한 사람은 10명 중 2명이 채 되지 않았다(16%). 반면 그렇지 않다는 응답은 절반 가까이(49%)에 달했다. 100점 만점으로 환산하면 39점. 낙제에 가까운 수준이다.
집단별로 보면 격차가 뚜렷하다. 이념별로는 보수층(32점)이 진보층(42점)·중도층(41점)보다 크게 낮다. 세대별로는 40대(43점)가 상대적으로 가장 높고, 70세 이상(35점)이 가장 낮다. 그러나 어느 세대도 50점을 넘지 못했다. 계층별로는 하위 계층(37점)이 상위(41점)·중위(42점)보다 낮다. 대통령 국정운영 긍정 평가자(45점)와 부정 평가자(31점) 사이에는 14점의 차이가 있다.
숫자가 다르고 집단이 달라도 결론은 하나로 모인다. 우리 사회가 통합됐다고 느끼는 사람은 어디에도 많지 않다.
세부적으로 들어가면 숫자는 더 낮아진다. 국민통합이 잘 이루어지고 있다는 긍정 응답은 7%에 그쳤다. 10명 중 단 한 명도 안 된다. 반면 다양한 의견과 가치를 가진 사람들이 함께 공존하고 있다는 데는 51%가 동의했다. 우리 사회에 다양한 사람들이 함께 살고 있다는 사실 자체는 인정하면서도, 그것이 통합으로 이어지고 있다는 느낌은 없는 것이다. ‘다양하지만 통합되지 않은 사회’라는 역설적 인식이다.
갈등이 대화와 타협으로 해결될 수 있다는 가능성에 대해서도 부정(42%)이 긍정(24%)을 크게 앞질렀다. 문제가 있다는 것은 알지만 풀릴 것 같지 않다는 비관론이 지배적이다.
가장 심각한 갈등으로는 진보-보수 갈등(36%)이 1위를 차지했고, 여야 갈등(24%)이 뒤를 이었다. 두 정치적 갈등을 합치면 전체의 60%다. 부유층-저소득층 갈등(13%), 젠더 갈등(9%), 세대 갈등(8%)도 있지만 국민 눈에 통합을 가로막는 가장 큰 벽은 단연 정치 진영의 싸움이다.
국민통합 문제를 정부가 적극적으로 나서서 해결해야 한다는 응답은 63%로 높다. 그러나 정부가 실질적으로 갈등을 줄일 수 있다는 효능감 동의는 43%에 그쳤다. 기대와 신뢰 사이에 간극이 있다. 국민은 정부가 나서주기를 원하면서도, 그것이 실제로 달라질 것이라는 믿음은 갖지 못하고 있다.
통합, 무엇으로 만들어지는가
통합의 구성요소는 공정성, 예측가능성, 일체감
공정성, 예측가능성, 일체감 모두 낮은 수준
통합이 무너졌다는 진단만으로는 부족하다. 무엇이 통합을 구성하는지를 알아야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보인다.
통합은 서로 같은 생각을 갖거나 서로를 좋아하게 되는 것이 아니다. 생각이 달라도 같은 규칙 아래 살아갈 수 있다는 믿음, 나의 노력이 허공에 흩어지지 않을 것이라는 기대, 어려운 상황에 처해도 혼자가 아니라는 감각. 이런 것들이 쌓일 때 비로소 사람들은 서로를 경쟁자가 아닌 이웃으로 바라보게 된다.
사회통합을 연구하는 학자들은 통합의 조건을 크게 세 가지로 나눠왔다. 규칙의 공정성, 삶의 예측가능성, 그리고 공동체적 일체감이다. 이번 조사는 이 세 가지 차원에서 우리 국민이 지금 무엇을 얼마나 체감하고 있는지를 측정했다.
- 공정성: 규칙이 누구에게나 동등하게 적용되고, 노력하면 기회를 얻을 수 있는 사회인가. 공정한 절차가 보장될 때 사람들은 결과에 승복하고 공동체를 신뢰한다.
- 예측가능성: 오늘의 노력이 내일의 가능성으로 이어지고, 뜻밖의 위기가 닥쳐도 국가가 최소한의 안전망을 제공해주는 사회인가. 미래를 예측할 수 있을 때 사람들은 지금을 투자하고 공동체에 기여한다.
- 일체감: 나와 다른 사람들과도 공통의 경험과 가치를 나누며 함께 살아간다는 연결감이 있는가. 혼자가 아니라는 감각이 있을 때 사람들은 분열보다 연대를 선택한다.
이 세 가지는 따로 작동하지 않는다. 규칙이 공정하다는 신뢰가 생겨야 내 미래를 예측할 수 있고, 그 위에서 비로소 우리가 같은 사회를 살고 있다는 연결감도 자란다. 어느 하나라도 무너지면 각자도생의 심리가 강해지고 통합은 멀어진다.
이번 조사에서도 세 가지 체감이 높을수록 국민통합 인식도 높아지는 것이 확인됐다. 그리고 세 가지 모두 지금 낮다. 100점 만점으로 환산하면 공정성 32점, 예측가능성 46점, 일체감 45점. 예측가능성과 일체감이 간신히 40점대를 유지하고 있을 뿐, 공정성은 30점대 초반으로 떨어져 있다. 통합을 떠받쳐야 할 세 기둥이 모두 기울어진 상태다.
공정성 ‒ 법 앞의 평등 27점, 전체 최저
세 가지 중 공정성의 평가가 가장 낮았다. 100점 만점으로 32점. 통합의 토대 중 가장 약한 곳이다.
세부 항목으로 들어가면 더 선명해진다. ‘권력이나 배경과 무관하게 법과 규칙이 모두에게 동등하게 적용된다’는 항목은 27점으로, 이번 조사 전체 문항 가운데 가장 낮은 점수를 기록했다. 10명 중 7명(70%)이 부정적으로 답했다. ‘공정한 기회가 주어지는 사회다’는 36점, ‘갈등이 공정한 절차로 다루어진다’는 32점이었다. 어느 항목도 낙제를 면하지 못했다.
법 앞에 평등하다는 신뢰가 이 정도로 낮다는 것은 단순한 불만의 표현이 아니다. 사회의 기본 규칙에 대한 신뢰가 오래전부터 무너져 있었다는 뜻이다. 공정한 규칙이 있어야 사람들은 결과에 승복한다. 내가 지더라도 규칙이 공정했다면 받아들일 수 있다. 그 신뢰가 없으면 어떤 결과도 정당성을 갖기 어렵다. 정치 갈등이 타협 없이 격화되는 것도, 사회적 논쟁이 합의에 이르지 못하는 것도 결국 이 불신에서 비롯된다.
흥미로운 것은 사회 전반에 대한 인식과 나 개인의 체감 사이의 차이다. 사회 수준에서 공정성은 32점으로 낮지만, 개인 체감은 38점으로 상대적으로 높다. ‘사회는 불공정하지만 나는 그나마 기회를 얻을 수 있다’는 인식이다. 이를 사회심리학에서는 ‘제3자 효과’라고 부른다. 문제는 사회에 있고 나는 예외라는 심리다. 그러나 이 체념과 적응의 심리가 쌓일수록 불공정한 구조에 대한 사회적 문제 제기는 약해진다. 모두가 ‘나는 괜찮다’고 생각하는 사이, 불공정은 조용히 구조화된다.
사람들이 공동체에 등을 돌리는 것은 대개 생각이 달라서가 아니다. 규칙이 나에게는 다르게 적용된다는 느낌, 노력해도 결과가 달라지지 않는다는 경험이 쌓일 때다. 공정성은 통합의 출발점이다. 그리고 지금 그 출발점이 가장 낮은 곳에 있다.
예측가능성 ‒ 안전망은 있는 줄 알지만, 나를 지켜줄 것 같지 않다
세 가지 중 예측가능성은 46점으로 상대적으로 가장 높다. 그러나 50점, 즉 중간에도 미치지 못한다. 노력이 내일의 가능성으로 이어지고, 위기가 닥쳐도 혼자가 아니라는 감각. 그것이 지금 절반에도 못 미치는 수준이라는 뜻이다.
세부 항목을 보면 ‘경제적으로 어려운 사람도 기본 생활이 가능한 구조다’가 50점으로 가장 높고, ‘노력하면 더 높은 삶을 누릴 수 있다’가 46점, ‘안전망이 위기에 처한 사람들을 충분히 보호한다’가 43점이었다. 기본 생활의 가능성은 간신히 중간을 유지하고 있지만, 노력이 보상으로 이어진다는 믿음과 안전망에 대한 신뢰는 중간에 미치지 못한다.
그런데 이 섹션에서 가장 주목해야 할 것은 사회 수준 인식과 개인 체감 사이의 간극이다. ‘우리 사회의 안전망은 위기에 처한 사람들을 충분히 보호한다’는 사회 수준 평가는 43점이었다. 그런데 같은 내용을 개인에게 물었더니 ‘위기가 닥쳐도 국가가 나를 충분히 보호해 줄 것 같다’는 응답은 36점으로 낮아졌다. 7점의 차이. 이번 조사에서 사회 수준과 개인 체감 간 격차가 가장 큰 항목이다.
안전망이 존재한다는 것은 알지만, 막상 내가 추락할 때 그것이 나를 받아줄 것이라는 확신이 없다. 제도의 존재와 그것이 나에게 작동한다는 신뢰는 전혀 다른 감각이다. 국민은 안전망의 존재를 머리로는 알고 있다. 그러나 가슴으로는 믿지 않는다.
이 간극은 집단별로 더욱 선명해진다. 비경제활동 인구와 하위 계층에서 안전망 개인 체감이 특히 낮았다. 정작 안전망이 가장 필요한 사람들이 그것을 가장 믿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제도를 만드는 것과 그것이 신뢰받는 것은 다른 문제다. 안전망이 실제로 작동한다는 경험이 쌓이지 않으면 제도는 종이 위의 약속에 머문다. 국민이 원하는 것은 안전망의 존재가 아니라 그것이 내 삶에 실제로 닿는 경험이다.
일체감 ‒ 사회도 나도, 동일하게 낮다
일체감은 45점으로 예측가능성(46점)과 비슷한 수준이다. 그런데 다른 두 가치와 달리 일체감에서는 사회 수준과 개인 체감 사이의 간극이 거의 없다. 사회 45점, 개인 44점. 사실상 같다.
공정성에서는 사회보다 개인이 높았고(제3자 효과), 예측가능성에서는 사회보다 개인이 낮았다(안전망 불신). 그런데 일체감에서는 둘이 거의 일치한다. 사회가 단절돼 있다는 인식과 내가 단절돼 있다는 감각이 동일한 수준으로 존재한다는 뜻이다. 사회적 분열이 개인의 심리 깊숙이 내면화된 상태다.
세부 항목을 보면 결이 갈린다. ‘우리 국민에게는 갈등이 있어도 함께 사회를 지탱하는 공통의 경험과 가치가 있다’는 항목은 전체 평균 51점으로 상대적으로 높았다. 우리가 완전히 남남은 아니라는 감각, 공통의 무언가가 아직 남아 있다는 인식이다. 월드컵 광장의 함성, 재난 앞에서 모이는 자원봉사자들, 명절마다 고향으로 향하는 귀성길. 어딘가에 우리를 묶어주는 것이 아직 있다고 국민은 느끼고 있다.
그러나 그 공통의 감각이 실제 관계로 이어지고 있느냐고 물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서로의 처지를 이해하고 배려한다’는 41점, ‘세대·성별·지역이 달라도 함께 어울릴 공간과 기회가 충분하다’는 43점으로 낮았다. 공통의 가치는 있다고 느끼지만, 실제로 서로를 이해하고 어울리는 경험은 부족하다는 것이다.
이것이 일체감의 딜레마다. 우리가 같은 사회를 살고 있다는 추상적 연결감은 있지만, 그것이 구체적인 만남과 경험으로 채워지지 않는 상태. 공통의 감각은 남아 있지만 그것을 확인하고 쌓아갈 공간과 기회가 부족하다.
그나마 긍정적인 신호는 공통 경험과 가치에 대한 인식이 세 가지 가치 중 유일하게 50점을 넘었다는 점이다. 일체감 회복의 가능성이 아직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았다. 그 가능성을 실제 경험으로 연결하는 것, 그것이 과제다.
국민통합을 위한 과제
국민이 원하는 것 ‒ 투명성이 먼저다
12가지 정책 과제 중 가장 시급하게 추진해야 할 것 3가지를 순서대로 꼽아달라고 했다. 1·2·3순위 응답을 합산한 결과, 1위는 ‘정책결정 과정의 투명한 공개’, 2위는 ‘계층이동 기회 보장’이었다. 노력이 결과로 이어지는 구조만큼이나, 그 과정이 국민에게 투명하게 공개되는 것을 간절히 원하고 있다는 신호다.
3위는 ‘갈등영향 평가제도 도입’, 4위는 ‘잠재적 갈등요소 선제 대응’으로 예방적 갈등 관리에 대한 수요가 뒤를 이었다. 반면 공통경험 창출이나 기부·자원봉사 문화 활성화 같은 연대·문화 과제는 하위권에 머물렀다.
세대와 이념, 계층이 달라도 결국 두 과제 사이를 오간다. 국민이 원하는 것은 거창한 비전이 아니었다. 열심히 살면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는 가능성, 그리고 그 과정이 투명하게 공개된다는 믿음. 그 두 가지가 지금 가장 시급하다.
이 두 과제는 앞서 살펴본 세 가지 가치와 정확히 연결된다. 계층이동 기회는 예측가능성의 언어다. 정책결정 투명성은 공정성의 언어다. 국민이 시급하다고 꼽은 것이 결국 통합의 토대를 세우는 일이라는 뜻이다.
국민이 정책결정 투명성을 가장 시급한 과제로 꼽았다는 것은, 정부가 어떤 결정을 어떻게 내리는지를 보여주는 것만으로도 신뢰 회복의 실마리가 될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계층이동 기회 역시 마찬가지다. 누구나 노력하면 나아질 수 있다는 믿음이 살아있을 때, 사람들은 사회의 규칙을 받아들이고 공동체에 자신을 걸게 된다. 국민이 가장 시급하다고 말하는 지점이 바로 여기다.
정치 양극화 ‒ 국민 10명 중 8명, “통합을 가로막는다”
이번 조사에서 가장 높은 동의율을 기록한 문항은 놀랍게도 정책이나 제도에 관한 것이 아니었다. “정치 양극화가 심화될수록 국민통합은 더 어려워진다.” 이 문장에 80%가 동의했다. 이념도, 세대도, 계층도 달랐지만 이 하나의 문장 앞에서는 국민 대부분이 같은 생각이었다.
국민은 이미 알고 있다. 지금 통합을 가로막는 가장 큰 벽이 무엇인지를.
전망은 더 어둡다. “우리 사회의 정치 양극화는 앞으로도 계속 심해질 것이다”에 76%가 동의했다. 4명 중 3명이 앞으로 더 나빠질 것이라고 보고 있다. 여야가 실질적으로 타협하고 협력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가능하다는 응답은 19%에 불과했다. 10명 중 2명도 안 된다.
기관 신뢰도에서도 회의감이 묻어난다. 국회에 대한 불신은 61%로 4대 기관 중 가장 높았다. 법원(55%), 선거제도(53%), 정부(43%)가 뒤를 이었다. 선거제도마저 절반 이상이 불신하고 있다는 사실은, 민주주의의 기본 절차에 대한 신뢰가 흔들리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러나 비관론 속에서도 국민이 원하는 방향은 분명했다. “정치적 이념이나 진영보다 민생 중심의 실용주의 정치가 필요하다”에 76%가 동의했다. 정치 관심층에서는 열 명 중 여덟 명(81%), 무관심층에서도 열 명 중 일곱 명(71%)의 응답자가 실용주의 정치의 필요를 답했다. 지금의 진영 정치가 아닌 다른 방식에 대한 요구도가 높음을 확인할 수 있다.
주목할 것은 정치 양극화가 통합을 저해한다는 인식이 국정운영 평가와 무관하게 공통적으로 나타났다는 점이다. 국정운영을 잘하고 있다는 집단에서도, 못하고 있다는 집단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지지 여부와 상관없이, 정치 갈등이 사회를 갈라놓고 있다는 사실은 누구나 느끼고 있다.
그것이 역설이다. 정치 양극화가 문제라는 데는 모두가 동의하지만, 그 양극화를 만들어내는 정치 구조 속에서 우리는 여전히 살고 있다.
나가며 ‒ 신뢰는 선언으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추석 식탁으로 돌아가 보자. 음식이 식기 전에 화제를 돌린 어머니의 한마디, “그냥 밥이나 먹자.” 그 말 속에는 체념도 있고, 배려도 있고, 어떻게든 이 자리를 지키고 싶다는 마음도 있다. 갈등을 외면한 것이 아니라, 그 자리만큼은 하나이고 싶었던 것이다.
우리 국민도 비슷한 마음인지 모른다. 통합이 안 됐다고 느끼면서도, 정치 양극화가 더 심해질 것이라고 전망하면서도, 그럼에도 76%가 실용주의 정치를 원하고 80%가 양극화가 통합을 막는다고 말한다. 포기한 것이 아니다. 지금과는 다른 방식을 원하고 있는 것이다.
이번 조사가 보여주는 것은 간단하다. 공정성 32점. 예측가능성 46점. 일체감 45점. 그리고 통합 인식 39점. 통합을 떠받쳐야 할 세 기둥이 모두 기울어진 상태에서, 통합 인식이 높아지기를 기대하는 것은 어렵다. 특히 법 앞의 평등 27점은 묵과할 수 없는 숫자다. 규칙이 모두에게 공평하게 적용된다는 신뢰 없이, 통합은 구호에 머문다.
국민이 시급 과제 1위로 꼽은 것이 ‘정책결정 과정의 투명한 공개’였다는 사실도 같은 맥락이다. 거창한 통합의 비전이 아니라, 우리가 어떤 결정을 어떻게 내리고 있는지를 국민에게 투명하게 보여달라는 것. 그것이 신뢰의 출발점이라는 것을 국민은 알고 있다.
신뢰는 선언으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법이 모두에게 공평하게 적용되고, 열심히 살면 더 나은 내일을 기대할 수 있으며, 위기의 순간 국가가 실제로 나를 지켜준다는 경험이 반복될 때 비로소 뿌리를 내린다.
명절마다 고향으로 향하는 귀성길, 그 차 안에서 우리는 각자 다른 생각을 품고 있다. 그래도 같은 길을 달린다. 같은 음식을 먹고, 같은 하늘 아래 잠든다. 우리가 완전히 하나가 되지 못하더라도, 같은 규칙 아래 서로를 믿으며 살아갈 수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할지 모른다.
국민통합은 서로를 사랑하게 만드는 일이 아니다. 서로를 믿을 수 있게 만드는 일이다. 그리고 지금, 그 믿음의 토대를 다시 세우는 것이 가장 시급한 과제다.
조사개요
- 모집단: 전국의 만18세 이상 남녀
- 표집틀: 한국리서치 마스터샘플(2026년 7월 기준 전국 97만여 명)
- 표집방법: 지역별, 성별, 연령별 기준 비례할당추출
- 표본크기: 1,000명
- 표본오차: 무작위추출을 전제할 경우, 95% 신뢰수준에서 최대허용 표집오차는 ±3.1%p
- 조사방법: 웹조사(휴대전화 문자와 이메일을 통해 url 발송)
- 가중치 부여방식: 지역별, 성별, 연령별 가중치 부여(셀가중) (2026년 6월 행정안전부 발표 주민등록 인구 기준)
- 응답율: 조사요청 64,548명, 조사참여 1,636명, 조사완료 1,000명 (요청대비 1.5%, 참여대비 61.1%)
- 조사일시: 2026년 8월 7일 ∼ 8월 10일
- 조사기관: (주)한국리서치(대표이사 노익상)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