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경쟁은 패자를 배제할 필요가 없다
앞선 칼럼에서 나는 우리가 살고 있는 탈산업사회에 만연한 '외로움'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리고 그 외로움이 정치적으로 위험하다는 아렌트의 경고도 간략히 전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얼마나 외로운 것일까? 도대체 외로움은 어떻게 생겨나며 어떤 이유로 정치적으로도 위험할 수 있다는 것일까? 더하여 선거제도 개혁이 외로움을 다루는데 도대체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것일까?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더 나은 삶의 질' 조사 지표에는 '곤란한 상황에서 도움을 청할 가족이나 친구가 있는가'라는 항목이 있다. 사회적 연계를 보여주는 지표 중 하나다. 그래서 이 항목은 외로움을 간접적으로 드러내는 지표로도 쓰인다. 외로움이 원래 '도움을 청할 곳이 없다'는 뜻을 담고 있었다는 점을 생각해보면 타당한 쓰임새다. 2017년 이 조사에서 대한민국 사람들은 76%가 그렇다고 답했는데 OECD 41개국 중 최하위였다. OECD 국가 평균이 89%이고 바로 위 40위 멕시코가 80%였음을 확인해 보면 더욱 씁쓸해진다. 외로움부 장관을 임명한 영국은 93%였다.
2018년 4월 한국리서치에서 만 19세 이상 1000 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웹조사 결과도 비슷하다. 응답자의 7%가 '거의 항상' 외롭다고 했고 19%는 '자주' 외롭다고 답했다. 26%에 이르는 사람들이 '상시적으로' 외롭다고 답한 것이다. 놀랍게도 '곤란한 상황에서 도움을 청할 가족이나 친구가 있는가'라는 항목에 그렇지 않다고 대답한 사람들과 거의 비슷한 비율이다. 특히 소득이 낮은 사람들, 특히 200만 원 이하의 응답자들은 39%가 '거의 항상' 혹은 '자주' 외롭다고 답한 반면 외로움을 느끼지 못한다고 답한 이들은 11%에 불과했다. [후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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